3/24/2009

논술과 폭력

** 논술과 폭력


- 말(speech)과 글(writing)은 다르다. 말은 대화이기 때문에 많은 상황과 감정의 차원이 개입된다. 글은 일방적이며 그러한 복합요소들이 추상되기 쉽다.

- 글은 정보전달기능(informative)뿐 아니라 정서표현적(expressive) 기능, 행동지침적(imperative) 윤리적 기능까지를 포괄한다.

- 논리와 수학은 하나로 통한다. 그리고 그것은 플라톤에게는 이데아(Idea)의 세계였다.

- 논술은 의사소통의 합리성(Communicative Rationality)을 대전제로 하고 있다.

- 페니키아문명(Phoenician Civilization) : 인류에게 알파벳을 선사한 고문명. 레바논이 그 중심이었다. 게발(Gebal), 시돈(Sidon), 쵸르(Tsor), 베로트(Berot) 등이 주요도시였다. 기원전 3000년경부터 시작.

- 이율곡은 도성에 2만, 조선8도 각기 1만씩 하여 10만의 정규군 양성을 주장했다. 그들에게는 호세(戶稅)를 면제시켜 주어야 한다. 율곡의 주장은 구체적이었다.

- 인간은 시천주(侍天主)의 평등한 존재다. 인간이 곧 하늘님(天主)이다. 남녀노소, 적서, 반상의 차별은 철폐되어야 한다. - 수운(水雲)과 해월(海月)의 주장

- 복벽운동 : 군주제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조선왕조 사대부들의 주장. 벽은 군주를 의미한다.

- 애국계몽운동(愛國啓蒙運動) : 복벽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새로운 근대적 민족국가를 건립하기 위해서 새로운 가치관을 계몽시키자는 운동. 대개 타협적인 교육운동이 그 주류였다.

- 공산주의(Communism)는 당시 서양사조의 하나였을 뿐이다. 그리고 한국의 독립투사들에게 그것은 반식민지투쟁을 위하여 적합한 이론이라고 인식될 수 있는 소지가 풍부했다.

- 3·1운동은 새로운 국가이상에 대한 범국민적 합의라고 볼 수 있다.

-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(獨立國)임과 조선인의 자주민(自主民)임을 선언하노라. - 기미독립선언서

- 이회영(李會榮) : 호는 우당(友堂). 아버지가 이조판서였고 큰아버지가 영의정. 당대 최고부자였지만 6형제가 모두 재산을 팔아 서간도로 이주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운동기지를 구축했다. 모범적 애국자.

- 단재 신채호, 우당 이회영, 심산 김창숙은 모두 철저한 무장투쟁론자였으며 아나키즘(anarchism)의 신봉자였다.

- 무오독립선언 : 3·1운동 전년 1918년 11월에 북간도 용정(龍井)을 중심으로 김교헌, 김동삼, 김약연, 김좌진, 신규식, 신채호, 안창호, 황상규 등 39명이 연명하여 독립을 선언함. 3·1운동의 진원이 됨.

- 여운형은 1918년 8월 장덕수·김철·선우혁·한진교·조동우와 함께 신한청년당(新韓靑年黨)을 조직하여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특사를 만나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을 파견했다. 그리고 3·1운동의 국제적 흐름을 주도했다.

- 1920년 청산리대첩의 주력군은 홍범도(洪範圖, 1868 ~ 1943) 부대였다. 그는 봉오동전투에서부터 승리를 거두었고 청산리대첩까지 완벽하게 수행해내었다. 김좌진은 그중 한 부대를 이끌었고 혁혁히 싸웠다.

-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. All history is contemporary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