9/01/2009

춘추의 시작

** 춘추의 시작


- 오르세미술관 : 1900년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세워진 파리의 기차역을 1980년대 미술관으로 개조하여 다기능 문화공간으로 활용. 인상파 작품을 집중적으로 소장.

- 밀레(1814 ~ 1875) : 노르망디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공부. 쿠르베와 더불어 사실주의의 대가로 꼽힘.

- 사실주의(realism) : 예술에 있어서의 사실주의란 현재적 삶과 그 문제들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묘사하려는 노력을 말한다. 예술운동으로서는 19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비로소 시작되었다.

- 사실주의 이전의 누드는, 희랍여신상 조각에서 보여지듯이 이상화된 형상(Ideal Form)의 추구였다. 이러한 형상이론은 플라톤의 기하학주의적 이데아론과 상통한다.

- 인상주의(impressionism)는 당대의 광학이론과 깊은 관련이 있다. 인간에게 주어지는 대상은 빛의 반사에 의해 우리 감관에 주어지는 색깔들의 인상일 뿐이다. 그들은 이 인상을 그리고자 하였다.

- im(밖에서 안으로) + press(누른다. 찍힌다) = impression(인상)

- 쇠라(Georges Seurat, 1859 ~ 1891) : 인상파화가로 점묘법을 극단적으로 발전시킴. 대표작 『라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』

- 마네(Edouard Manet, 1832 ~ 1883) : 『불로뉴 항의 달빛』

- 모네(Claude Monet, 1840 ~ 1926)

- 왕희지(王羲之, 321 ~ 379) : 동진 시대의 서예가. 회계산음(會稽山陰) 출신. 정치가로서도 훌륭한 실적을 남김. 중국서체를 완성. 당태종이 애호하여 서성(書聖)으로 모시었다.

- 해서(楷書) : 일점일획을 정확히 독립시켜 쓰는 서체. 정서(正書)·진서(眞書)라고도 한다. 진·한대의 예서(隸書)로부터 발전. 초당 삼대가, 우세남·구양순·저수량에서 완성.

- 광개토대왕비 : 414년 장수왕이 세움. 1882년 일본인 발굴 보고. 길림성 집안시 사공리(四公里)에 위치. 높이 6.39m. 1,800여 글자.

- 신묘년(辛卯年) 기사 부분을 일본인들이 탁본하면서 "倭(왜)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를 쳐부셨다"는 식으로 왜곡시켰다. 지금까지도 이것은 학계의 논쟁으로 남아있다.

- 김생(金生, 711 ~ ?) : 통일신라시대의 서예가. 고려시대 문인들이 그를 해동제일의 서예가로 평가하였다.

- 탄연(坦然, 1070 ~ 1159) : 고려시대의 고숭. 성은 손씨(孫氏). 호는 묵암(默庵). 왕희지 필체를 고려인 고유서법으로 재창조.

- 안평대군(安平大君, 1418 ~ 1453) : 세종의 셋째아들. 이름은 이용(李瑢). 시·서·화에 모두 뛰어났다. 황보인·김종서와 함께 수양대군과 대립. 계유정난 이후 사사됨.

- 왕안합체(王安合體) : 동진 왕희지와 당나라 안진경의 서체의 느낌을 조화시킨 서체. 고려에서 조선중기에 이르기까지 이런 서체의 흐름이 우리나라에 있었다.

- 안진경(顔眞卿, 709 ~ 785) : 성당(盛唐)의 절개 드높은 정치가며 서예가. 두툼하고 박력있는 서체를 창안. 구양순·우세남·저수량과 함께 당사대가로 꼽힘.

- 조맹부(1254 ~ 1322) : 원나라 사람. 오흥(吳興)출신. 자는 자앙(子昻). 그 서재를 송설재(松雪齎)라고 불렀다. 화려한 연미(燕尾)의 서체

- 이황(李滉, 1501 ~ 1570) : 호는 퇴계(退溪). 신유학을 조선사회의 맥락에서 재해석하여 집대성. 퇴계의 도학풍 이후에는 서체가 소박·간결한 마음의 표현으로 변모한다.

- 양사언(楊士彦, 1517 ~ 1584) : 조선 전기의 서예가. 1546년 문과급제. 8고을 수령을 지냄. 황기로와 함께 초서에 뛰어났다.

- 황기로(黃耆老) : 16세기의 초서 명가. 호는 고산(孤山). 진사에 합격했으나 벼슬을 사양했다. 낙동강 서쪽에 매학정(梅鶴亭)을 짓고 신선처럼 살았다. 해동초성(海東草聖)

- 초서(草書) : 점획을 생략하여 연결된 선으로 빨리 쓰는 서체. 예서에서 탈화되어 한나라 초기부터 이미 발달하였다. 후한 말에 상당히 정비됨.

- 한호(韓濩, 1543 ~ 1605) : 선조 연간을 대표하는 명서가. 호는 석봉(石峰). 명종 22년에 진사합격. 사자관(寫字官)으로 활약. 조맹부의 송설체를 벗어나 왕희지의 고법을 추구, 자기서체를 이룸

- 송시열(宋時烈, 1607 ~ 1689) : 호는 우암(尤庵). 본관은 은진. 노론의 영수. 율곡학문의 적통. 송준길(宋浚吉)의 서체와 함께 양송체(兩宋體)로 유명.

- 허목(許穆, 1595 ~ 1682) : 호는 미수. 청남(淸南)의 영수. 전서의 동방 제1인자

- 윤순(尹淳, 1680 ~ 1741) : 호는 백하(白下). 미불·문징명·동기창의 서법을 구사

- 이광사(李匡師, 1705 ~ 1777) : 호는 원교(員嶠). 윤순의 문하생. 정제두에게서 양명학을 배움

- 김정희(金正喜, 1786 ~ 1856) : 호는 추사(秋史), 완당(阮堂). 1819년 문과 급제. 이조참판에 이름. 금석학에 뛰어났다.

- 이삼만(李三晩, 1770 ~ 1845 ?) : 호는 창암(蒼巖). 정읍출생으로 전주에 살면서 서예에 몰두. 독특한 자기 필법의 초서를 잘 썼다.

- 강세황(姜世晃, 1712 ~ 1791)

- 이인상(李麟詳, 1710 ~ 1760)

- 신위(申緯, 1769 ~ 1845)

- 박제가(朴齊家, 1750 ~ 1805) : 호는 초정(楚亭). 박지원·이덕무·유득공 등의 북학파와 교류. 글씨는 예서풍을 띠며, 구양순·동기창의 행서를 잘썼고, 추사체의 형성에 결정적 역할.

- 이하응(李昰應, 1820 ~ 1898) : 호는 석파(石坡). 불우한 청년기를 보내며 서민의 삶을 체험하고 서화를 익혔다. 그 난초는 천하 제일품이다. 글씨도 추사체에 뒤지지 않는 자기 서풍이 있다.

- 김옥균(金玉均, 1852 ~ 1894) : 호는 고균(古筠). 본관은 안동. 오경석의 제자. 갑신정변 3일천하의 주인공.

-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비(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碑) : 강원도 원성군 부론면 법천리 소재. 전체 높이 4.55m.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석비(1085년)

- 맹의자(孟懿子) : 맹희자(孟僖子)의 아들. 공자와 동시대 사람으로 삼환 맹손씨 가문의 대부.

- 번지(樊遲) : 46세 연하의 말년 제자. 약관의 나이에 계씨 밑에서 벼슬함. 공자의 수레몰이 역할을 자주함.

- 삼환(三桓) : 노나라의 실권을 장악한 세 가문을 지칭. 맹손씨(孟孫氏)·숙손씨(叔孫氏)·계손씨(季孫氏).

- 은공(隱公) : 노나라에 봉하여진 주공(周公)의 아들. 백금(伯禽)이 노나라의 제1대 군주다. 세는 방법에 따라 은공은 14대로, 혹은 13대 군주로 기술된다.

- 『춘추』(春秋) : 은공 원년(BC 722)부터 애공 14년(BC 481)까지 12공 242년간의 노나라 역사를 기술한 책.

- 「노주공세가」(魯周公世家) : 사마천 『사기』의 제33권. 노나라의 통사에 해당된다. 사건들이 드라마틱하고 포괄적으로 기술되어 있다.

- 식(息) : 은공의 이름. 혜공(惠公)의 천첩(賤妾)인 성자(聲子)의 소생

- 윤(允) : 훗날의 환공(桓公). 혜공과 송녀 사이에서 난 아들. 윤이 태어나자 송녀는 정부인으로 승격되었다.

- 문강(文姜) : 강국 齊나라의 양공(襄公)의 여동생. 환공 3년에 魯나라 환공에게 시집옴. 유명한 음녀인데, 그녀를 풍자한 노래들이 『시경』에 다수 남아있다.

- 동(同) : 환공과 문강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. 훗날의 장공(莊公). 태어난 날이 환공 생일과 같아 이름을 동(同)이라 했다.

- 신수 : 노나라의 대부. 환공이 문강과 함께 제나라로 근친(覲親)가는 것을 만류한 충신.

- 애강(哀姜) : 문강의 오빠이며 정부인 제 양공의 친딸. 문강의 아들인 노나라 장공에게 시집오다.